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그 믿지 않는 사람에게 기대를 하는 것 같다. 그 기대는 온전히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의 희망이 담긴 따뜻한 기대보다는 그 관계가 끝이 난 뒤에 인간의 기본 도리, 예의에 관한 기대이지만. 삶을 유지해나가면서 나는 혹은 나를 포함한 우리는 여러 유형의 사람들과 여러 상황에서 관계라는 걸 맺을 것이다. 점점 그 관계는 피상적이고 배금주의에 걸맞게 조건과 화려한 스펙들이 그 관계의 지속가능한 것을 나눌 것이다.
조금은 지친다. 아버지 장례식 장에서 보여진 친척들의 동물만도 못한 만행이, 잘해주고 참아주고 이해해주는 결과가 이대나온 여자와의 바람이였던 그 새끼가, 문화다 청춘이다 찌껄이면서 결국엔 홍대나온 디자이너들은 발 붙일 곳이 없게 만들겠다며 온갖 욕설이 담긴 문자-전화 세례를 퍼붓던 미친놈들도, 그럴듯한 꿈 얘기로 스튜디오를 차리고 결국엔 스튜디오를 빼던 날 벽에 온갖 낙서와 내가 키우는 고양이 인형들에 몹쓸 짓을 하는 심보며, 뽑아먹을 것 다 뽑아먹고 내 컴퓨터에 있는 자기에게 필요한 자료만 가지고 호박씨까는 배운척 하는 화장품, 피부과, 남자 얘기만 해대던 그들도. 진심으로 불행하길 바란다.
어쩌면 나에게 환경이 변하지 않은 채로 흘러가는 불행과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는 과잉된 자아의 욕구불만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한마디로 지랄하고 있는 것. 화가난다. 매일이 보여지고, 그걸 참아야 하고, 그리고 다시금 나는 선비다 나는 배운 여자다 나는 괜찮아 나는 참을 수 있다는 반복하는데. 그것을 깨달았다. 쓰레기는 영원히 쓰레기이고, 그 냄새나는 것에 왜 냄새가 나는지를 물으면 안되는 거라는 것. 시궁창에 있으며, 시궁창이 아닌 곳으로 향해야지, 내가 지금 시궁창에 있는 것을 자책하면 해결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내가 지금 발이 붙어 있는 이곳은 역겨운 냄새와 끈적이는 더러움으로 가득한 시궁창은 맞다. 고귀한척 안하고, 나도 덤비면 되는 거다 그 더러움에.
오랜만에 위로 차원에서 학교 도서관을 들렀다. 그럴싸한 제목을 책을 5분안에 대출받고, 집에 와서 하릴 없이 읽고 있다.
3부가 넘어간 순간. 누가 적은지 모르겠는 깨알 노트가 있었다. 내용은,
‘한번은 엄마가 미국산 소고기를 사왔다. 우리 엄마는 광우병 이런거 모른다. 엄마는 마트에서 일명 여사님이라고 불리며 물건을 파는데, 그걸로 내 학비와 용돈과 고깃값을 댄다. 오늘도 아픈 무릎을 쩔뚝이며 부엌으로 들어와서는 “우리 아들, 엄마가 소고기 사왔다. 같이 먹지.” 라고 말한다. 거기다 대고 난 “엄마, 제일 싸다고 미국산 사오지 말고 조금 더 비싸도 호주산이나 한우가와.” 라고 말 할 수 없었다. 만일 애가 얼마 안 가 개거품을 물고, 내 이름이 무엇이였는 고민하게 되더라도, 지금 당장은 안쓰러운 엄마가 ‘아들 주려고 사온 소고기’를 맛있게 먹어보여야 한다.’
석사고 학사고 ctrl+c, ctrl+v로 짜깁기 논문낸 구 운동선수 출신이나, 형수인지 처제인지 성추행한 범죄자 출신도 국회의원이 되는 마당에, 나는 선거날 소중한 한 표를 바치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 내 영어점수, 내 스펙 따위를 고민하며 부단히 자신을 학대하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게 없는 요즘이 화가난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내가 거지같은 건지, 세상이 거지같은 건지.
이십대, 까도 우리가 깐다.